
photo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4월 17일 오전 서울대병원 본관 3층 심혈관조영실. 10여명의 의료진이 환자의 심장 시술에 열중하고 있었다. 전공의 집단 사직서 제출로 의료 파행이 이어지는 가운데 만난 광경이라 반가웠다. 필수의료가 완전히 멈추진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부터 들었다.
낮 12시 정각, 김효수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푸른색 수술복 차림으로 조영실 내 면담실로 왔다. 이곳이 김 교수의 연구실인 셈인데,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가 왜 연구실을 조영실 안에 뒀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인터뷰 도중 몇 차례나 전임의들의 보고를 받으면서 시술한 환자의 예후를 살폈다. 그가 인터뷰를 점심시간에 하자고 한 것도 오후 진료와 회의 일정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는 30여년 전부터 점심 식사를 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점심시간 1~2시간을 줄여 환자 진료를 빨리 마침으로써 환자의 편의를 돕고 나머지 시간을 연구 등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김 교수는 방금 진행한 시술부터 설명했다.
완전히 막힌 혈관을 뚫는 CTO
"환자가 숨이 가빠서 못 참겠다고 호소하는 등 준응급상황이라서 전공의들이 없지만 시술을 했다. 전임의 선생 4명이 힘들지만 도와줘서 시술을 잘 끝냈다. 대동맥 판막 협착이 있는 환자로, 30분간 인공판막 삽입 시술을 했다. 예전 같으면 가슴을 절개해서 판막을 대체하는 데 4시간이 소요되는 큰 수술이었지만 요즘은 주로 시술로 치료한다."
수술 없이 대동맥 판막을 교체하는 시술을 TAVI(타비·경피적대동맥판막치환술)라고 한다. TAVI는 사타구니 혈관을 통해 카테터를 집어넣어 문제의 판막을 제치고 인공판막을 끼우는 고난이도 시술로, 14년 전 서울대병원에 도입했다. 김 교수는 국내 TAVI 선도자로 지금까지 약 600례를 시술했다.
김 교수는 국내외 심혈관질환 치료와 연구에서 큰 족적을 남겨왔다. TAVI 시술뿐만 아니라 완전히 막힌 관상동맥을 뚫는 CTO(만성폐쇄성관동맥질환) 시술도 초창기부터 참여해서 김 교수는 높은 시술 성공률을 보이고 있다. CTO 시술은 사타구니 동맥을 통해 유도철선을 삽입해 막힌 혈관을 뚫고 스텐트를 펼쳐 혈관을 확장하는 기법이다. 김 교수는 "CTO는 날카로운 철사를 막힌 혈관 속으로 넣어서 굴착을 하기 때문에 혈관 천공 위험이 있는 고난이도 시술"이라며 "손가락 감촉으로 경로를 벗어나는지를 파악하면서 '굴착 공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경험이 필요하고 제자들에게 전수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폐쇄된 관상동맥 구간이 긴 경우, 혈관 한쪽만 뚫으면 뒤쪽에서 경로를 벗어나는 일이 흔히 발생한다"며 "이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양쪽 사타구니 혈관에 철선을 동시에 삽입해 막힌 관상동맥의 앞쪽과 뒤쪽을 동시에 뚫는 시술(역행 시술법)을 도입해 성공률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15년 전 에 시술법 전문가인 일본인 의사를 서울대병원에 초빙해 직접 시술법을 배웠다. 김 교수는 "이런 노력과 경험을 쌓은 덕분에 지금까지 CTO 시술을 500건 이상 했으며 성공률이 95%에 이른다"고 말했다.

김효수 교수는 2020년과 2021년에 항혈소판제인 프라수그렐의 최적 요법을 제시한 논문(왼쪽 사진)과 아스피린과 클로피도그렐 효과를 비교한 논문을 각각 학술지 ‘란셋’에 게재해 항혈소판제 사용에 대한 세계 지침을 바꿨다. photo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줄기세포로 심장근육을 소생
김 교수는 기초연구를 많이 하는 의사로도 유명하다. 그는 세포치료와 유전자 연구 등 기초연구를 꾸준히 해왔다. 일부 유전자를 세계 최초로 발굴해 염기서열을 규명, 해독(解讀)하는 등 현재 10여개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기도 하다. 일본 도쿄대학에서 18개월 동안 분자세포생물학을, 미국 보스턴 성엘리자베스병원에서 2년간 유전자치료법과 줄기세포생물학을 연구하며 기초연구 능력을 키웠다. 2002년 귀국하자마자 국내에서 최초로 심혈관 줄기세포 연구를 시작했고, 이를 심근경색 환자에게 적용하는 방법인 매직셀 치료법을 개발해 환자 치료에 사용하고 있다.
매직셀은 심근경색증 환자의 심근 재생과 심기능 보호를 돕는 치료법이다. 2004년 '란셋', 2006년 '서큘레이션', 2012년 '유로피언 하트 저널' 등 심혈관계의 세계 최고 학술지에 매직셀 프로그램 관련 18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김 교수는 "심근경색증이 발생하면 스텐트를 삽입해 혈관을 뚫지만 혈류 공급이 정지된 상태에서 받은 '허혈 충격'과 개통 후 '재관류 충격' 때문에 심장 근육세포들이 4주에 걸쳐서 서서히 죽어가면서 심근경색증 후의 흉터가 고착된다"며 "응급 스텐트 삽입술 직후 환자의 말초혈액으로부터 줄기세포를 추출해서 심근경색 부위에 주입해 죽어가는 심근세포를 살리는 것이 매직셀 치료법의 원리"라고 말했다. 매직셀 치료는 2020년에 정부로부터 혁신의료기술로 선정되었다.
김 교수는 또 죽상경화증뿐만 아니라 비만, 당뇨병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만성염증 요인에 대해서도 중요한 발견을 했다. 그는 리지스틴 호르몬이 수용체인 CAP1 단백질과 결합하면 염증세포가 활성화되고, 이 염증세포가 혈관을 따라 인체 곳곳을 돌며 만성염증 반응을 유발하며, 이는 죽상경화증, 비만, 당뇨병의 원인이 된다는 메커니즘을 2014년 세계 최초로 규명해 '셀' 자매지인 '셀 메타볼리즘'에 발표했다. 그는 "리지스틴이 혈관의 CAP1과 만나면 동맥경화증이 악화되고, 근육의 CAP1과 만나면 당뇨병이 유발되는 기전을 세계 최초로 밝힌 연구였다"며 "이후 리지스틴이 간, 종양세포, 장, 관절 등 각종 장기에 존재하는 CAP1과 결합해 간섬유화·간염, 종양세포 성장 및 전이, 염증성장질환, 관절염을 각각 일으킨다는 기전을 연이어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 연구를 바탕으로 국내 항체전문기업과 함께 리지스틴-CAP1의 결합을 차단하는 항체를 개발해 현재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 교수는 또 간 손상을 보호하는 줄기세포 치료제인 '인간배아줄기세포 유래 간엽세포'를 개발하여 대웅제약에 기술 이전을 완료했다. 아울러 간섬유화를 차단할 TIF1 유전자를 항섬유화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이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유전자 치료제를 폐섬유화증, 간섬유화증, 저항성 유방암 치료제로 키울 계획이다"라며 "이들 치료제는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심혈관연구단(김효수 심혈관연구단)을 만들어 25년 동안 키워온 연구의 결실을 이제 보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항혈소판제 세계 지침 바꿔
김 교수는 관상동맥 스텐트 시술을 받은 환자의 재발 방지를 위해 사용이 권고되던 아스피린보다 클로피도그렐이 더 우월하다는 연구 결과를 최고 권위 학술지들에 연이어 발표해 전 세계 심혈관질환 학계를 들썩이게 했다. 관상동맥 스텐트 시술을 한 사람은 혈전 생성을 억제하는 항혈소판제를 평생 복용해야 하는데, 세계 표준지침은 항혈소판제로 아스피린을 복용하도록 권고해왔었다. 김 교수는 2014년부터 본 연구를 시작하여 관상동맥 스텐트 시술 환자 5438명을 대상으로 한 2년간의 연구 결과를 '란셋'에 발표했고, 이후 추적 관찰을 계속하여 6년간의 결과를 2022년 미국심장협회 학술지 '서큘레이션'에 발표했다. 심혈관사건 발생 비율이 클로피도그렐군 복용군 13%, 아스피린군 복용군 17%로, 클로피도그렐이 심혈관사건 위험을 의미 있게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였다. 김 교수의 설명이다.
"관상동맥 스텐트 삽입 후 초기에는 2개의 항혈소판제를 사용하지만, 안정기에 접어들면 아스피린 단독 요법을 권고해왔다. 그런데 아스피린은 아라키돈산의 합성을 억제하는 기전이기에, 혈전 차단의 효과가 약하면서 조직벽을 허물어 출혈 부작용이 흔한 단점이 있다. 특히 서양에는 스텐트 시술 후 항혈소판제를 투여할 경우, 혈전 혈성이 중요한 이슈이지만 동양인(한국인 포함)에게는 출혈 이슈가 더 흔한 문제가 되고 있다. 내가 해온 연구는 서양인과는 다른 동양인에게 적절한 항혈소판제 사용 지침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심장학회와 유럽심장학회는 이 연구 이후에 클로피도그렐을 처음부터 사용할 수 있다고 지침을 바꿨다."
가슴 중앙 묵직한 통증 있으면 병원 가야
국내 심혈관질환 진료 인원은 2018년 108만명에서 2022년 126만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가장 심각한 심혈관질환은 심근경색증과 협심증이다. 심근경색증은 관동맥이 완전히 막혀 심장 괴사가 시작된 상태로 신속히 조치하지 않으면 심장마비로 사망에 이른다. 협심증은 관상동맥이 완전히 막히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좁아져서 하부 심근으로 가는 혈류량이 모자라게 된 상황이다. 안정 시에는 증상이 없지만 운동이나 노동을 하면 심근에 혈액이 모자라 가슴통증, 호흡곤란 등이 나타난다.
심근경색증과 협심증은 응급 질환이지만 증상이 애매한 경우가 많아 때를 놓치기 쉽다. 김 교수에 따르면 실제로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 환자의 대부분은 심근경색증이나 협심증이 아니다. 김 교수는 "심장에 의한 흉통이냐 비심장성 흉통이냐를 가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왼쪽 가슴의 특정 부위가 콕콕 찌른다며 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은데 이런 증상은 골격, 가슴뼈, 갈비뼈, 근육, 관절에 의한 문제이기에 심각하지 않다. 심장처럼 내장 기관에 의한 통증은 손가락으로 정확한 위치를 가리킬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서 "가슴 정중앙에서 묵직하게 억누르는 느낌이 들거나 갑갑하고 식은땀이 나며 구역질이 날 경우 심근경색증이나 협심증을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심장 증상을 잘 인지하고 함부로 응급실을 찾지 않아야 정작 심장병인 환자가 원활하게 응급조치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LDL 콜레스테롤 수치는 낮을수록 좋다
심혈관질환 위험 인자는 당뇨병, 고혈압, 고지질혈증, 가족력, 비만 등이다. 김 교수는 이들 인자 중 특히 저밀도 콜레스테롤(LDL)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규모 연구 결과에 따르면 LDL 콜레스테롤이 독점적으로 1위 유발 인자다"라며 "LDL은 낮을수록 좋은데, LDL을 55㎎/dl로 낮추면 나이가 들어도 혈관 플라크 진행이 멈춘다"고 말했다. 이어서 "중성지방 수치도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연구 결과들이 항상 일치하지 않고, HDL 콜레스테롤은 효과적으로 높일 약이 없다"고 했다.
일반인은 LDL이 130 이하면 정상 범주이지만 가족력 등 위험 요인이 있을 경우 100 이하로 낮추는 것이 좋고 관상동맥질환을 겪은 환자의 경우 50~60으로 낮게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LDL을 효과적으로 낮추기 위해 의사들은 주로 지질 강하제인 스타틴을 처방한다. 스타틴이 잘 듣지 않으면 에제티미브를 함께 사용한다. 이들 2개 약제를 써도 효과가 미미할 경우 PCSK9 단백질 억제 항체 치료제인 에볼로큐맵, 알리로큐맵 등을 사용한다. 김 교수는 "PCSK9은 간세포 표면의 LDL 수용체를 잡아먹어서, LDL 소모와 배출을 방해해 혈중콜레스테롤치를 높이는 '나쁜 놈'이다"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2020년 PCSK9이 LDL 수용체를 파괴하는 데 'CAP1 단백질'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밝혀 '유러피언 하트 저널'에 발표했다.
복부비만이 만든 염증도 심혈관질환의 적
김 교수는 심혈관질환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위험 요인으로 염증을 들었다. 김 교수가 말하는 염증은 외상에 의해 박테리아가 감염되어 발생하는 급성염증과는 종류가 다르다. 성인병을 초래하는 만성염증의 발원지는 비만한 복부내장지방이다. 이 지방 조직에 단핵구(혈액 내 식세포)가 침윤하면서 많은 사이토카인을 분비하기 때문에 전신에 염증이 지속된다. 그 결과 죽상경화증, 당뇨병, 암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와 관련한 기전을 밝혀 최근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를 통해 발표했다. 연구 결과에 대한 김 교수의 설명을 옮겨본다.
"LDL을 충분히 낮췄지만 여전히 심근경색증과 협심증이 발생한다. 그 이유는 바로 염증 때문이다. 우리의 최신 연구 결과에 의하면, PCSK9이라는 '나쁜 놈'이 LDL을 올릴 뿐만 아니라 염증을 일으킨다. 그동안 PCSK9이 염증을 유발한다고 의심했지만 직접 증거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처음으로 PCSK9이 리지스틴의 수용체인 CAP1과 결합해 염증을 일으킨다는 기전을 밝혀냈다. 스타틴으로 LDL 수치를 낮췄다고 해도 스타틴에 의해서 PCSK9이 올라가기 때문에 염증 수치가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LDL 수용체 여부와 관계없이 PCSK9이 죽상경화증을 악화시키는 새로운 기전이 있음을 발견했다"며 "PCSK9과 CAP1의 결합을 차단하는 차단제(Fc-CAP1)를 개발하고 있다. 이 차단제의 강점은 콜레스테롤과 염증 위험을 둘 다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시판 중인 PSCK9 차단항체는 콜레스테롤만 낮추고 염증을 억제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김 교수는 "심혈관질환 예방 및 관리를 위해서는 LDL과 염증 관리가 핵심"이라며 "염증의 근원인 복부비만을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심혈관질환을 예방하는 식습관은 무엇일까. 김 교수에 따르면 육류는 LDL을 높이므로 달걀 흰자, 생선, 저지방 우유가 좋다. 또 탄수화물은 중성지방을 높이므로 쌀과 밀가루 섭취를 줄이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달콤한 과일은 좋지 않으며, 달지 않은 야채는 많이 먹어도 좋다. 운동은 유산소운동에 근육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좋다. 근육운동을 하면 마이오카인이라는 물질이 분비되어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체중 증가를 억제한다.
실력 있는 심혈관질환 의사는 누구?
심혈관질환 분야에서 실력 있는 현역 후배 의사들이 누구인지 김 교수에게 추천을 요청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양산부산대병원 순환기내과 전국진 교수는 '진국이다'라고 불릴 정도로 강의나 시술이 정교하고 실력이 있다.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권현철 교수도 논리가 정연하고 시술도 잘한다.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김중선 교수는 인품이 좋고 심방세동 환자에서 혈전 형성을 막는 심방 차단 시술에서 탁월하다.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배장환 교수와 한양대병원 심장내과 임영효 교수도 미래 유망한 젊은 실력파이다.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송재관 교수는 심장 초음파를 보는 데 학식이 깊고 환자의 진단과 치료 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김 교수는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들에게 자신의 의술을 나눠서 전수하고 있다고 했다. 항혈소판제 부문은 '제2의 김효수'라고 평가받는 박경우 교수에게 이관하고 있다. CTO는 한정규 교수가 이어받아 이미 시술 건수가 김 교수와 비슷하다. TAVI는 강지훈 교수가, 매직셀은 강현재 교수에 이어서 조현재 교수가 바통을 이어받고 있다. 김 교수는 "20년간 같이 했던 제자들에게 나의 전문성을 하나하나 전수해서 후계 구도가 확립됐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김공필 의학저널리스트
photo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4월 17일 오전 서울대병원 본관 3층 심혈관조영실. 10여명의 의료진이 환자의 심장 시술에 열중하고 있었다. 전공의 집단 사직서 제출로 의료 파행이 이어지는 가운데 만난 광경이라 반가웠다. 필수의료가 완전히 멈추진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부터 들었다.
낮 12시 정각, 김효수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푸른색 수술복 차림으로 조영실 내 면담실로 왔다. 이곳이 김 교수의 연구실인 셈인데,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가 왜 연구실을 조영실 안에 뒀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인터뷰 도중 몇 차례나 전임의들의 보고를 받으면서 시술한 환자의 예후를 살폈다. 그가 인터뷰를 점심시간에 하자고 한 것도 오후 진료와 회의 일정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는 30여년 전부터 점심 식사를 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점심시간 1~2시간을 줄여 환자 진료를 빨리 마침으로써 환자의 편의를 돕고 나머지 시간을 연구 등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김 교수는 방금 진행한 시술부터 설명했다.
완전히 막힌 혈관을 뚫는 CTO
"환자가 숨이 가빠서 못 참겠다고 호소하는 등 준응급상황이라서 전공의들이 없지만 시술을 했다. 전임의 선생 4명이 힘들지만 도와줘서 시술을 잘 끝냈다. 대동맥 판막 협착이 있는 환자로, 30분간 인공판막 삽입 시술을 했다. 예전 같으면 가슴을 절개해서 판막을 대체하는 데 4시간이 소요되는 큰 수술이었지만 요즘은 주로 시술로 치료한다."
수술 없이 대동맥 판막을 교체하는 시술을 TAVI(타비·경피적대동맥판막치환술)라고 한다. TAVI는 사타구니 혈관을 통해 카테터를 집어넣어 문제의 판막을 제치고 인공판막을 끼우는 고난이도 시술로, 14년 전 서울대병원에 도입했다. 김 교수는 국내 TAVI 선도자로 지금까지 약 600례를 시술했다.
김 교수는 국내외 심혈관질환 치료와 연구에서 큰 족적을 남겨왔다. TAVI 시술뿐만 아니라 완전히 막힌 관상동맥을 뚫는 CTO(만성폐쇄성관동맥질환) 시술도 초창기부터 참여해서 김 교수는 높은 시술 성공률을 보이고 있다. CTO 시술은 사타구니 동맥을 통해 유도철선을 삽입해 막힌 혈관을 뚫고 스텐트를 펼쳐 혈관을 확장하는 기법이다. 김 교수는 "CTO는 날카로운 철사를 막힌 혈관 속으로 넣어서 굴착을 하기 때문에 혈관 천공 위험이 있는 고난이도 시술"이라며 "손가락 감촉으로 경로를 벗어나는지를 파악하면서 '굴착 공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경험이 필요하고 제자들에게 전수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폐쇄된 관상동맥 구간이 긴 경우, 혈관 한쪽만 뚫으면 뒤쪽에서 경로를 벗어나는 일이 흔히 발생한다"며 "이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양쪽 사타구니 혈관에 철선을 동시에 삽입해 막힌 관상동맥의 앞쪽과 뒤쪽을 동시에 뚫는 시술(역행 시술법)을 도입해 성공률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15년 전 에 시술법 전문가인 일본인 의사를 서울대병원에 초빙해 직접 시술법을 배웠다. 김 교수는 "이런 노력과 경험을 쌓은 덕분에 지금까지 CTO 시술을 500건 이상 했으며 성공률이 95%에 이른다"고 말했다.
김효수 교수는 2020년과 2021년에 항혈소판제인 프라수그렐의 최적 요법을 제시한 논문(왼쪽 사진)과 아스피린과 클로피도그렐 효과를 비교한 논문을 각각 학술지 ‘란셋’에 게재해 항혈소판제 사용에 대한 세계 지침을 바꿨다. photo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줄기세포로 심장근육을 소생
김 교수는 기초연구를 많이 하는 의사로도 유명하다. 그는 세포치료와 유전자 연구 등 기초연구를 꾸준히 해왔다. 일부 유전자를 세계 최초로 발굴해 염기서열을 규명, 해독(解讀)하는 등 현재 10여개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기도 하다. 일본 도쿄대학에서 18개월 동안 분자세포생물학을, 미국 보스턴 성엘리자베스병원에서 2년간 유전자치료법과 줄기세포생물학을 연구하며 기초연구 능력을 키웠다. 2002년 귀국하자마자 국내에서 최초로 심혈관 줄기세포 연구를 시작했고, 이를 심근경색 환자에게 적용하는 방법인 매직셀 치료법을 개발해 환자 치료에 사용하고 있다.
매직셀은 심근경색증 환자의 심근 재생과 심기능 보호를 돕는 치료법이다. 2004년 '란셋', 2006년 '서큘레이션', 2012년 '유로피언 하트 저널' 등 심혈관계의 세계 최고 학술지에 매직셀 프로그램 관련 18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김 교수는 "심근경색증이 발생하면 스텐트를 삽입해 혈관을 뚫지만 혈류 공급이 정지된 상태에서 받은 '허혈 충격'과 개통 후 '재관류 충격' 때문에 심장 근육세포들이 4주에 걸쳐서 서서히 죽어가면서 심근경색증 후의 흉터가 고착된다"며 "응급 스텐트 삽입술 직후 환자의 말초혈액으로부터 줄기세포를 추출해서 심근경색 부위에 주입해 죽어가는 심근세포를 살리는 것이 매직셀 치료법의 원리"라고 말했다. 매직셀 치료는 2020년에 정부로부터 혁신의료기술로 선정되었다.
김 교수는 또 죽상경화증뿐만 아니라 비만, 당뇨병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만성염증 요인에 대해서도 중요한 발견을 했다. 그는 리지스틴 호르몬이 수용체인 CAP1 단백질과 결합하면 염증세포가 활성화되고, 이 염증세포가 혈관을 따라 인체 곳곳을 돌며 만성염증 반응을 유발하며, 이는 죽상경화증, 비만, 당뇨병의 원인이 된다는 메커니즘을 2014년 세계 최초로 규명해 '셀' 자매지인 '셀 메타볼리즘'에 발표했다. 그는 "리지스틴이 혈관의 CAP1과 만나면 동맥경화증이 악화되고, 근육의 CAP1과 만나면 당뇨병이 유발되는 기전을 세계 최초로 밝힌 연구였다"며 "이후 리지스틴이 간, 종양세포, 장, 관절 등 각종 장기에 존재하는 CAP1과 결합해 간섬유화·간염, 종양세포 성장 및 전이, 염증성장질환, 관절염을 각각 일으킨다는 기전을 연이어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 연구를 바탕으로 국내 항체전문기업과 함께 리지스틴-CAP1의 결합을 차단하는 항체를 개발해 현재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 교수는 또 간 손상을 보호하는 줄기세포 치료제인 '인간배아줄기세포 유래 간엽세포'를 개발하여 대웅제약에 기술 이전을 완료했다. 아울러 간섬유화를 차단할 TIF1 유전자를 항섬유화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이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유전자 치료제를 폐섬유화증, 간섬유화증, 저항성 유방암 치료제로 키울 계획이다"라며 "이들 치료제는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심혈관연구단(김효수 심혈관연구단)을 만들어 25년 동안 키워온 연구의 결실을 이제 보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항혈소판제 세계 지침 바꿔
김 교수는 관상동맥 스텐트 시술을 받은 환자의 재발 방지를 위해 사용이 권고되던 아스피린보다 클로피도그렐이 더 우월하다는 연구 결과를 최고 권위 학술지들에 연이어 발표해 전 세계 심혈관질환 학계를 들썩이게 했다. 관상동맥 스텐트 시술을 한 사람은 혈전 생성을 억제하는 항혈소판제를 평생 복용해야 하는데, 세계 표준지침은 항혈소판제로 아스피린을 복용하도록 권고해왔었다. 김 교수는 2014년부터 본 연구를 시작하여 관상동맥 스텐트 시술 환자 5438명을 대상으로 한 2년간의 연구 결과를 '란셋'에 발표했고, 이후 추적 관찰을 계속하여 6년간의 결과를 2022년 미국심장협회 학술지 '서큘레이션'에 발표했다. 심혈관사건 발생 비율이 클로피도그렐군 복용군 13%, 아스피린군 복용군 17%로, 클로피도그렐이 심혈관사건 위험을 의미 있게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였다. 김 교수의 설명이다.
"관상동맥 스텐트 삽입 후 초기에는 2개의 항혈소판제를 사용하지만, 안정기에 접어들면 아스피린 단독 요법을 권고해왔다. 그런데 아스피린은 아라키돈산의 합성을 억제하는 기전이기에, 혈전 차단의 효과가 약하면서 조직벽을 허물어 출혈 부작용이 흔한 단점이 있다. 특히 서양에는 스텐트 시술 후 항혈소판제를 투여할 경우, 혈전 혈성이 중요한 이슈이지만 동양인(한국인 포함)에게는 출혈 이슈가 더 흔한 문제가 되고 있다. 내가 해온 연구는 서양인과는 다른 동양인에게 적절한 항혈소판제 사용 지침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심장학회와 유럽심장학회는 이 연구 이후에 클로피도그렐을 처음부터 사용할 수 있다고 지침을 바꿨다."
가슴 중앙 묵직한 통증 있으면 병원 가야
국내 심혈관질환 진료 인원은 2018년 108만명에서 2022년 126만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가장 심각한 심혈관질환은 심근경색증과 협심증이다. 심근경색증은 관동맥이 완전히 막혀 심장 괴사가 시작된 상태로 신속히 조치하지 않으면 심장마비로 사망에 이른다. 협심증은 관상동맥이 완전히 막히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좁아져서 하부 심근으로 가는 혈류량이 모자라게 된 상황이다. 안정 시에는 증상이 없지만 운동이나 노동을 하면 심근에 혈액이 모자라 가슴통증, 호흡곤란 등이 나타난다.
심근경색증과 협심증은 응급 질환이지만 증상이 애매한 경우가 많아 때를 놓치기 쉽다. 김 교수에 따르면 실제로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 환자의 대부분은 심근경색증이나 협심증이 아니다. 김 교수는 "심장에 의한 흉통이냐 비심장성 흉통이냐를 가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왼쪽 가슴의 특정 부위가 콕콕 찌른다며 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은데 이런 증상은 골격, 가슴뼈, 갈비뼈, 근육, 관절에 의한 문제이기에 심각하지 않다. 심장처럼 내장 기관에 의한 통증은 손가락으로 정확한 위치를 가리킬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서 "가슴 정중앙에서 묵직하게 억누르는 느낌이 들거나 갑갑하고 식은땀이 나며 구역질이 날 경우 심근경색증이나 협심증을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심장 증상을 잘 인지하고 함부로 응급실을 찾지 않아야 정작 심장병인 환자가 원활하게 응급조치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LDL 콜레스테롤 수치는 낮을수록 좋다
심혈관질환 위험 인자는 당뇨병, 고혈압, 고지질혈증, 가족력, 비만 등이다. 김 교수는 이들 인자 중 특히 저밀도 콜레스테롤(LDL)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규모 연구 결과에 따르면 LDL 콜레스테롤이 독점적으로 1위 유발 인자다"라며 "LDL은 낮을수록 좋은데, LDL을 55㎎/dl로 낮추면 나이가 들어도 혈관 플라크 진행이 멈춘다"고 말했다. 이어서 "중성지방 수치도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연구 결과들이 항상 일치하지 않고, HDL 콜레스테롤은 효과적으로 높일 약이 없다"고 했다.
일반인은 LDL이 130 이하면 정상 범주이지만 가족력 등 위험 요인이 있을 경우 100 이하로 낮추는 것이 좋고 관상동맥질환을 겪은 환자의 경우 50~60으로 낮게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LDL을 효과적으로 낮추기 위해 의사들은 주로 지질 강하제인 스타틴을 처방한다. 스타틴이 잘 듣지 않으면 에제티미브를 함께 사용한다. 이들 2개 약제를 써도 효과가 미미할 경우 PCSK9 단백질 억제 항체 치료제인 에볼로큐맵, 알리로큐맵 등을 사용한다. 김 교수는 "PCSK9은 간세포 표면의 LDL 수용체를 잡아먹어서, LDL 소모와 배출을 방해해 혈중콜레스테롤치를 높이는 '나쁜 놈'이다"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2020년 PCSK9이 LDL 수용체를 파괴하는 데 'CAP1 단백질'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밝혀 '유러피언 하트 저널'에 발표했다.
복부비만이 만든 염증도 심혈관질환의 적
김 교수는 심혈관질환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위험 요인으로 염증을 들었다. 김 교수가 말하는 염증은 외상에 의해 박테리아가 감염되어 발생하는 급성염증과는 종류가 다르다. 성인병을 초래하는 만성염증의 발원지는 비만한 복부내장지방이다. 이 지방 조직에 단핵구(혈액 내 식세포)가 침윤하면서 많은 사이토카인을 분비하기 때문에 전신에 염증이 지속된다. 그 결과 죽상경화증, 당뇨병, 암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와 관련한 기전을 밝혀 최근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를 통해 발표했다. 연구 결과에 대한 김 교수의 설명을 옮겨본다.
"LDL을 충분히 낮췄지만 여전히 심근경색증과 협심증이 발생한다. 그 이유는 바로 염증 때문이다. 우리의 최신 연구 결과에 의하면, PCSK9이라는 '나쁜 놈'이 LDL을 올릴 뿐만 아니라 염증을 일으킨다. 그동안 PCSK9이 염증을 유발한다고 의심했지만 직접 증거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처음으로 PCSK9이 리지스틴의 수용체인 CAP1과 결합해 염증을 일으킨다는 기전을 밝혀냈다. 스타틴으로 LDL 수치를 낮췄다고 해도 스타틴에 의해서 PCSK9이 올라가기 때문에 염증 수치가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LDL 수용체 여부와 관계없이 PCSK9이 죽상경화증을 악화시키는 새로운 기전이 있음을 발견했다"며 "PCSK9과 CAP1의 결합을 차단하는 차단제(Fc-CAP1)를 개발하고 있다. 이 차단제의 강점은 콜레스테롤과 염증 위험을 둘 다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시판 중인 PSCK9 차단항체는 콜레스테롤만 낮추고 염증을 억제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김 교수는 "심혈관질환 예방 및 관리를 위해서는 LDL과 염증 관리가 핵심"이라며 "염증의 근원인 복부비만을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심혈관질환을 예방하는 식습관은 무엇일까. 김 교수에 따르면 육류는 LDL을 높이므로 달걀 흰자, 생선, 저지방 우유가 좋다. 또 탄수화물은 중성지방을 높이므로 쌀과 밀가루 섭취를 줄이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달콤한 과일은 좋지 않으며, 달지 않은 야채는 많이 먹어도 좋다. 운동은 유산소운동에 근육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좋다. 근육운동을 하면 마이오카인이라는 물질이 분비되어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체중 증가를 억제한다.
실력 있는 심혈관질환 의사는 누구?
심혈관질환 분야에서 실력 있는 현역 후배 의사들이 누구인지 김 교수에게 추천을 요청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양산부산대병원 순환기내과 전국진 교수는 '진국이다'라고 불릴 정도로 강의나 시술이 정교하고 실력이 있다.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권현철 교수도 논리가 정연하고 시술도 잘한다.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김중선 교수는 인품이 좋고 심방세동 환자에서 혈전 형성을 막는 심방 차단 시술에서 탁월하다.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배장환 교수와 한양대병원 심장내과 임영효 교수도 미래 유망한 젊은 실력파이다.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송재관 교수는 심장 초음파를 보는 데 학식이 깊고 환자의 진단과 치료 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김 교수는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들에게 자신의 의술을 나눠서 전수하고 있다고 했다. 항혈소판제 부문은 '제2의 김효수'라고 평가받는 박경우 교수에게 이관하고 있다. CTO는 한정규 교수가 이어받아 이미 시술 건수가 김 교수와 비슷하다. TAVI는 강지훈 교수가, 매직셀은 강현재 교수에 이어서 조현재 교수가 바통을 이어받고 있다. 김 교수는 "20년간 같이 했던 제자들에게 나의 전문성을 하나하나 전수해서 후계 구도가 확립됐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김공필 의학저널리스트